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였다. 4차 산업혁명에서 로봇은 중요한 요소이다.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이 경고한 만큼, 때로 이것들은 심각한 삶의 문제이자 이슈이기도 하다. 필립 k. 딕의 SF 소설 <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> 라는 책에는 감정을 가지는 안드로이드 로봇의 문제를 다룬다. 이 소설은 <블레이드 러너> 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. 탐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. 과연 안드로이드는 혹시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?
이 책은 인간의 감정과 인공지능의 경계를 탐구한다.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.
먼저, 책은 안드로이드와 인간 간의 관계를 탐구한다.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다르게 프로그래밍된 존재이지만, 그들 또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을까? 책은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관계를 복잡하게 그린다.
한때 구글에서 만들어진 인공지능과의 대화가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.
무엇이 두렵냐는 개발자 질문에 인공지능은 "죽음" 이라고 답했다.
현대에 와서 인간과 로봇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기계냐, 그렇지 않느냐로는 정의되지 않을 수 있다.
가장 인간다운 것, 그것은 사람이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며, 행동한다는 사실일 것이다.
로봇은 세팅된 프로그램으로만 대상을 인식한다. 예컨대 로봇은 설계되어 있지 않는 한 의자의 범위를 지정할 수 없다. 등받이와 다리, 앉는 부분이 있는 가구만을 의자라고 인식한다면 단지 둥그런 모양으로 이루어진 '앉을 것' 을 의자라고 인식하지 않는 탓에 인식에 혼란이 올 수 있다. 이런 로봇에게는 감정도 설계되어야 작동한다. 만약 그렇다면,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?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로봇에게 감정을 넣는 일을 반대하기도 한다. 로봇이 '자기 의지로'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. 이 위험은 많은 것들을 초래한다. 감정을 갖게 된 로봇 또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피조물이 인간을 닮아가며 벌어지는 시나리오는 많은 매체에서 등장한다. 대표적인 예시로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 <인류멸망 보고서 - 천상의 피조물> (2012) 중 로봇 편이 있다.
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, 아주 먼 미래처럼 인식이 되어 오곤 했다. 그러나 이것은 결코 먼 일이 아니다. 당장 우리 옆에 있다. 이것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. 로봇은 갈수록 정교해지며 사람을 닮아간다. 혹자는 이것이 두려운 일이라고도 한다. 21세기는 사람이 달에 가는 시대이다. 사실 그 시기도 이미 지났다. 세상은 날이 갈수록 빠르게 변한다. 그러니 생각해봄직 하다.
이 소설의 시점 또한 미래이다. 그러므로 그렇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. 다만 분명한 것은, 이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이다. 안드로이드가 사람과 다르게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. 이 부분은 분명히 독자들에게 깊은 생각을 유발하는 것이다.
또한, 이 책은 인공지능의 발전과 인간의 감정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. 안드로이드는 뇌가 아닌 컴퓨터로 프로그래밍되었지만, 그들의 행동과 선택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? 책은 인공지능이 감정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며, 우리의 세계를 새롭게 보게 한다.
마지막으로, 책은 인간 자신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고찰을 제시한다.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면,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는 어떻게 되는가? 책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가 누구이며,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유도한다. 사람에 대한 본질적 탐구를 통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은 절묘하다. 가장 인간다우려면, 날이 갈수록 변해가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가?
결국, <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> 라는 책은 우리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을 자아낸다. 이 책은 우리에게 인간성과 기술의 경계에 대한 깊은 생각을 안겨주며, 우리의 삶과 기술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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